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【성 명】 박황(朴潢)
【생몰년】 1597(선조 30)∼1648(인조 26)
【본 관】 반남(潘南) 박(朴)
【자·호】 덕우(德雨), 유옹(儒翁), 나헌(懦軒)
【시 대】 조선 중기
【성 격】 문신
1597(선조 30)∼1648(인조 26). 본관은 반남(潘南), 자는 덕우(德雨), 호는 유옹(儒翁) · 나헌(懦軒)으로 아버지는 관찰사 박동열(朴東說)이고 어머니는 고령(高靈) 신씨(申氏)로 동지중추부사 신발(申撥)의 딸이다. 종숙 박동언(朴東彦)에 입양되었다.
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광해군 13년(1621) 문과에 급제하였으나, 인조반정(仁祖反正) 후 비로소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고, 이어서 홍문관 정자가 되었다. 그 후 세자시강원 설서 · 사헌부 장령 · 대사간을 거쳐 이조 참의를 지냈다.
1636년 병자호란(丙子胡亂)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, 공격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하고 국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. 그 후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(瀋陽)에 갔다온 후 병조 판서가 되었다. 그 후 대사헌 · 도승지를 역임하고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는데, 이때 반대파에 의해 반역의 혐의를 받고 김해로 귀양갔다가 곧 용서되어 전주 부사를 지냈다.
【참고문헌】 仁祖實錄, 國朝人物考, 國朝系行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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